경제 · 재산권 · 조세관계에 관한 결정
88헌가7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6조의 위헌심판
별칭 : 소송촉진특례법 사건
종국일자 : 1989. 1. 25. /종국결과 : 위헌
D88k007.hwp
판례집 1권 1면
가. 사건의 개요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가 창립된 이후 첫 번째 전원합의체 결정이면서 국가에 대해서는 가집행선고를 할 수 없도록 우월적 지위를 부여한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6조 제1항 단서에 대하여 위헌이라고 결정한 사건이다.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1981. 1. 29. 법률 제3361호) 제6조 제1항은 재산권의 청구에 관한 판결에는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당사자의 신청 유무를 불문하고 가집행할 수 있음을 선고하여야 한다고 하면서도 단서에서, "다만, 국가를 상대로 하는 재산권의 청구에 관하여는 가집행의 선고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은 국민이 승소하더라도 가집행을 선고받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 제도에 대해서는 그 동안 찬반논란이 많았는데 국가를 상대로 한 공탁금 반환청구소송을 진행중이던 제청신청인이 서울지방법원에 위 조항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였고 동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1988년 12월 16일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다.
나. 결정의 주요내용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평등의 원칙과 국고작용(國庫作用)에 관하여 언급한 다음,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6조 제1항 단서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하였다.
헌법전문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는 규정과, 제11조 제1항의 기회균등 또는 평등의 원칙 규정을 볼 때 평등의 원칙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우리 헌법의 최고원리로서 국가가 입법을 하거나 법을 해석 및 집행함에 있어 따라야 할 기준인 동시에 국가에 대하여 합리적 이유없이 불평등한 대우를 하지 말 것과 평등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는 모든 국민의 권리로서 국민의 기본권중의 기본권이라고 할 것이다.
평등의 원칙은 헌법 제23조에 의하여 보장된 '모든 국민의 재산권'과 제27조 제3항에 의하여 보장된 '모든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실현에도 당연히 적용되어야 하므로 재산권 등 사권(私權)의 구제절차인 민사소송에서도 당사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차별대우가 있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며 국가가 민사소송의 당사자가 되었다고 해서 합리적 이유없이 우대받아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이는 비록 국가라 할지라도 권력적 작용이 아닌 민사소송의 대상이 되는 국고작용으로 인한 법률관계에 있어서는 사인(私人)과 동등하게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집행의 선고는 불필요한 상소권의 남용을 억제하고 신속한 권리실행을 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재산권과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인데,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6조 제1항의 규정에 따르면 법원은 국가가 원고가 되어 얻은 승소판결에는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반드시 가집행의 선고를 하여야 하나 반면에 국민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얻어낸 승소판결에는 아무리 확신있는 판결이라고 할지라도 가집행의 선고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어 결국 재산권과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에 있어 소송당사자를 차별하여 국가를 우대하고 있는 것이 명백하고 이처럼 민사소송의 당사자를 차별하여 국가를 우대할 만한 합리적 이유도 찾기 어렵다.
가집행 선고는 불필요한 상소권의 남용을 억제하고 신속한 권리실현을 위하여 둔 제도이지 집행불능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제도가 아니므로 국가에 대하여 집행이 불가능하게 될 염려가 없다고 해서 가집행 선고의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고 가집행으로 인한 국가 회계질서 문란의 우려는 국가 스스로 얼마든지 이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으며 가집행후 상소심에서 판결이 번복되었을 경우 원상회복이 어렵게 될 경우는 국가가 피고일 경우에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가집행제도의 일반적인 문제라 할 것이어서, 이러한 문제는 법원이 판결을 함에 있어 가집행을 붙이지 아니할 상당성의 유무를 신중히 판단하고 민사소송법 제199조 제1항에 의한 담보제공명령이나 동조 제2항에 의한 가집행 면제제도를 적절하게 운용하며 또, 국가로서도 민사소송법 제473조, 제474조에 의하여 법원에 신청하여 가집행 정지명령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것이므로 위와 같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국가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가집행선고를 금지할 이유가 될 수 없다.
다. 사후경과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 창설후 최초로 선고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최초의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인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판단한 사건을 제일 처음 선고하게 된 것은 제1기 재판부의 헌법재판에 대한 의지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재판관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그간 우리 헌정사에서 잘못된 법과 제도가 많았는데 이제 국민의 힘에 의한 개헌으로 헌법재판소가 창설되었으므로 헌법재판소로서는 적극적인 맡은 바 소명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신문들은 이 결정이 1971년 대법원이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을 위헌선언한 이래 18년만에 처음 이루어진 위헌결정이라고 보도하고(조선일보 1989. 1. 26. 등), 사설을 통해 이 결정이 그동안 입법과 법률의 시행과정에서 국가 중심과 국가 우위에 치우치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한겨레신문 1989. 1. 27.).
이 사건의 주심이었던 변정수 재판관은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권위주의적 상황 아래에서 위헌결정을 못해온 벽을 깼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중앙일보 1989. 1. 26.).
이 결정으로 인해 헌법재판소의 기능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결정 이후 농·어민 등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계층이 더욱 다양해지고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 및 각종 민원 등에 대한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하였다(한국일보 1989. 2. 15.).